밭일하시던 아버지가 그늘에 주저앉으셨다. 얼굴이 벌겋고 숨이 가빴다. 괜찮으시냐고 물었더니 손을 저으신다. 좀 쉬면 낫는다고 하셨다. 나는 물 한 컵을 갖다 드리고 하던 일을 마저 했다. 삼십 분쯤 뒤 아버지는 다시 일어나 걸으셨고, 그날은 아무 일도 없었다.그해 여름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그날 아버지가 괜찮으셨던 건 내가 뭘 잘해서가 아니었다. 운이 좋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 무엇을 봐야 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온열질환은 하나가 아니다흔히 더위 먹었다고 뭉뚱그려 말하지만, 질병관리청은 온열질환을 열사병, 열탈진, 열경련, 열실신, 열부종으로 나눈다. 이름이 다르다는 건 위험도가 다르다는 뜻이다.이 가운데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사실상 열사병 하나다. 나머지는 대개 그늘에서 쉬고 수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