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에서 일어서는데 눈앞이 하얘졌다. 벽을 짚고 몇 초를 서 있었다. 시야가 돌아오고 나니 아무렇지도 않았다. 여름 들어 이런 일이 몇 번 있었다.
아내가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나는 손을 저었다. 나이 들면 다들 그런 거라고. 그 말을 하는 순간 판단이 멈춘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어지럼증을 하나의 증상으로만 알고 있었다. 알고 보니 원인이 네 갈래로 갈리고, 그중 하나는 혼자 판단할 일이 아니었다.
어지럼증은 왜 생기는 걸까, 핑 도는가 빙 도는가
찾아보면서 가장 도움이 됐던 구분이 이것이다. 어지럼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원인이 절반쯤 갈린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아찔한 느낌, 그러니까 핑 도는 쪽이라면 대개 혈압이나 탈수처럼 뇌로 가는 혈류 문제다. 반면 천장이나 방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느낌이라면 귀 안쪽 평형기관 쪽을 먼저 본다.
말장난 같지만 진료실에서 실제로 묻는 질문이다. 나는 이 구분을 몰라서 그저 어지럽다고만 말했고, 그래서 스스로도 무엇을 의심해야 할지 몰랐다.
일어설 때만 그렇다면, 기립성 저혈압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자료에 따르면 기립성 저혈압은 일어선 뒤 3분 이내에 수축기 혈압이 20mmHg 혹은 이완기 혈압이 10mmHg 이상 떨어지는 것으로 정의한다. 자율신경계가 나이가 들며 둔해져 생기는 문제이고, 노인 인구의 약 10~30%가 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여름이 문제가 된다. 땀으로 체액이 빠져나가 혈액량이 줄고, 더위에 혈관이 확장된다. 두 가지가 겹치면 같은 조건에서도 혈압이 더 떨어진다. 사우나나 뜨거운 목욕 뒤에 특히 잘 생기는 이유도 같다.
혈압약이나 이뇨제를 드시는 분이라면 한 번 더 짚어볼 대목이다. 겨울에 맞춰둔 용량이 여름에는 과할 수 있다. 다만 임의로 줄이거나 거르는 것은 위험하다. 아침저녁 혈압을 2주쯤 기록해서 들고 가 상의하는 것이 순서다.
천장이 돌아간다면, 이석증일 수 있다
빙 도는 쪽은 이야기가 다르다.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어지럼증센터 설명에 따르면 양성돌발성두위현훈, 흔히 이석증이라 부르는 이 병은 가만히 누워 있거나 앉아 있을 때는 괜찮다가 머리의 위치가 바뀔 때만 회전성 어지럼이 유발되며, 대부분 1분 이내로 짧게 지속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 돌아누울 때, 고개를 젖혀 위쪽 선반을 볼 때 갑자기 온다. 심하면 메스꺼움과 구토, 식은땀이 따라온다. 처음 겪으면 큰 병이 난 줄 알고 놀라게 된다.
다행인 것은 치료가 빠른 편이라는 점이다. 이석 정복술이라는 물리적인 처치로 호전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 병은 참고 버티는 것이 가장 손해다. 어지럽다고 며칠씩 누워 지내는 분들이 있는데, 오히려 확인을 받는 편이 빠르다.
이런 어지럼증이면 병원부터
세 단계로 나눠 두면 판단이 선다.
정상 — 일어설 때 잠깐 아찔하고 몇 초 안에 회복된다. 자주 반복되지 않고 다른 증상이 없다.
주의 — 어지럼이 반복된다. 어지러워 넘어진 적이 있다. 혈압약이나 이뇨제를 시작한 뒤 생겼다. 생활 관리를 해도 나아지지 않는다. 이 경우 진료로 원인을 가려야 한다.
즉시 병원 — 어지럼과 함께 한쪽 팔다리에 힘이 빠지거나, 말이 어눌해지거나, 물체가 둘로 보이거나, 얼굴이 한쪽으로 처지거나, 경험해 본 적 없는 심한 두통이 오거나, 서 있지도 걷지도 못할 정도라면 지체하지 않는다. 이때의 어지럼은 귀의 문제가 아니라 뇌의 문제일 수 있다.
특히 마지막 항목은 시간이 곧 결과를 바꾸는 영역이다. 지켜보자는 판단이 가장 위험하다.
어지럼증 예방하는 진짜 관리법
일어나는 방식부터 바꾸는 것이 첫 번째다. 누운 자세에서 바로 일어서지 말고, 앉아서 30초쯤 있다가 서는 습관을 들인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아찔한 순간을 확실히 줄여준다.
갈증을 느끼기 전에 물을 마시는 것도 중요하다. 여름에는 자각하기 전에 이미 부족해져 있는 경우가 많다. 다만 신장 질환이 있거나 수분 제한이 필요한 병이 있다면 이 원칙이 그대로 적용되지 않으니 주치의와 기준을 정해두는 편이 안전하다.
과음, 과식, 장시간 서 있기, 뜨거운 목욕은 증상을 부르는 상황이다. 하체 근력 운동과 다리 압박은 도움이 된다. 그리고 어지럼이 오면 무리해서 버티지 말고 즉시 앉거나 눕는다. 이 나이에는 어지럼 자체보다 넘어져서 생기는 골절이 더 큰 문제가 된다
.
그날 이후 나는 일어설 때 마루 끝에 잠시 앉아 있다가 선다. 별일 아닌 습관 하나 바꿨을 뿐인데 눈앞이 하얘지는 일이 줄었다. 그리고 "나이 탓"이라는 말은 되도록 쓰지 않기로 했다. 그 말은 설명이 아니라 판단을 미루는 핑계에 가까웠다. 어지러우시거든 우선 핑 도는지 빙 도는지부터 살펴 두시길 권한다.
참고: 분당서울대학교병원 「기립성 저혈압」,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어지럼증센터 「양성돌발성두위현훈」, 대한이비인후과학회 자료,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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