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건강검진 결과지에서 공복혈당 105라는 숫자를 보고도 아무 일 없이 지나갔습니다. 옆에 적힌 문구가 이랬거든요. "당뇨병 전단계."
'전(前)'이라는 글자가 주는 안도감이 있었습니다. 아직 아니라는 뜻이잖아요. 그래서 다음 검진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듬해 숫자는 112였고, 그다음 해에는 118이었습니다. 저는 매년 "아직 당뇨는 아니다"라는 말을 들으며 3년을 흘려보냈습니다.
100~125라는 구간의 정체
숫자부터 정리하겠습니다. 공복 8시간 이상 금식한 뒤 잰 혈당 기준입니다.
- 100 미만 — 정상
- 100 ~ 125 — 공복혈당장애 (당뇨병 전단계)
- 126 이상 — 당뇨병 의심 (다른 날 재검으로 확진)
여기서 많은 분들이 오해합니다. 100~125가 "정상에 가까운 쪽"이라고요.
아닙니다. 이 구간은 정상이 아닌 구간입니다. 당뇨병이 아니라는 뜻일 뿐, 정상이라는 뜻이 전혀 아닙니다.
'전단계'라는 이름이 문제입니다. 순서를 기다리는 대기실처럼 들리니까요. 실제로는 갈림길입니다. 한쪽은 정상으로 돌아가는 길이고, 다른 쪽은 당뇨병으로 가는 길입니다. 가만히 서 있으면 대개 뒤쪽으로 흘러갑니다.
되돌릴 수 있는 마지막 구간이기도 합니다
나쁜 소식만 있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이 구간은 생활습관만으로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구간입니다. 당뇨병으로 진단받은 뒤에는 정상으로 되돌리는 것이 훨씬 어려워집니다.
체중을 줄이고 규칙적으로 걷는 것만으로 당뇨병 발생을 크게 낮출 수 있다는 것은 대규모 연구들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됐습니다. 약보다 생활습관 쪽 효과가 더 컸다는 결과도 있습니다.
지금이 가장 적은 노력으로 가장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시기라는 뜻입니다.

공복혈당만 봐서는 놓칩니다
여기서 꼭 짚어야 할 게 있습니다.
한국인은 서양인에 비해 인슐린을 분비하는 능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편입니다. 그래서 공복혈당이 오르기 전에 식후혈당이 먼저 올라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복혈당 98이 나와서 "정상이네" 하고 넘어갔는데, 실제로는 식사 후에 혈당이 크게 치솟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마르셨다고 안심할 일도 아닙니다. 우리나라에는 체중이 많이 나가지 않는데도 혈당이 높은 분이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공복혈당이 100을 넘었거나, 가족 중에 당뇨병이 있거나, 배가 나오기 시작했다면 당화혈색소(HbA1c)를 함께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 지난 2~3개월의 평균 혈당을 보여주는 검사입니다.
- 5.7% 미만 — 정상
- 5.7 ~ 6.4% — 당뇨병 전단계
- 6.5% 이상 — 당뇨병 의심
수치로 본 나의 상태는?
● 정상 — 공복 100 미만, 당화혈색소 5.7% 미만 1년에 한 번 검진으로 확인하시면 됩니다.
● 주의 — 공복 100~125, 또는 당화혈색소 5.7~6.4% 약을 먹을 단계는 아닙니다. 대신 3~6개월 안에 다시 재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때 당화혈색소를 함께 확인하세요. 그냥 두고 1년 뒤에 보는 것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 병원 — 공복 126 이상, 또는 당화혈색소 6.5% 이상 다른 날 재검으로 확인이 필요합니다. 미루지 마시고 진료를 받으세요.
● 즉시 병원 — 이런 증상이 함께라면 물을 계속 마시게 되고 소변을 자주 보며, 먹는데도 체중이 눈에 띄게 빠질 때. 여기에 구역질, 복통,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증상이 겹치면 지체하지 마세요.
정리하고 갈 오해들
"단 것만 안 먹으면 된다" 설탕보다 더 큰 몫을 하는 건 매일 먹는 흰쌀밥, 국수, 빵 같은 정제 탄수화물입니다. 사탕은 가끔 먹지만 밥은 하루 세 번 먹으니까요.
"여주, 돼지감자, 뽕잎차로 혈당을 잡는다" 혈당 관리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진 식품들이 있지만, 검사와 치료를 대신할 수 있는 근거는 없습니다. 문제는 이런 것을 먹고 있다는 이유로 재검을 미루는 경우입니다. 먹는 건 자유지만, 그것 때문에 병원을 안 가는 건 손해입니다.
"마르면 당뇨 안 걸린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마른 체형에서도 혈당이 오릅니다.
"약 먹기 시작하면 평생 먹는다" 전단계는 아직 약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 걱정 때문에 진료를 미루면, 정작 약이 꼭 필요한 단계로 더 빨리 갑니다.
오늘부터 할 수 있는 다섯 가지
1. 체중의 5~7%를 목표로. 70kg이면 3.5~5kg입니다. 10kg 빼라는 말이 아닙니다.
2. 일주일에 150분 걷기. 하루 30분씩 주 5일. 식후에 걸으면 효과가 더 좋습니다.
3. 젓가락 순서 바꾸기. 채소 → 단백질 → 밥. 같은 밥상에서도 식후 혈당이 달라집니다.
4. 근력운동 주 2회. 근육이 포도당을 저장하는 창고입니다. 창고가 줄면 혈당이 갈 곳을 잃습니다.
5. 잠을 줄이지 않기. 수면 부족과 스트레스도 혈당을 올립니다.
아직이 아니라, 지금
'당뇨병 전단계'라는 말에서 사람들은 '전단계'를 듣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그 말의 진짜 의미는 "지금 움직이면 돌아갈 수 있다"입니다. 경고가 아니라 기회에 가깝습니다.
3년을 흘려보내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그때 105는 나쁜 숫자가 아니라, 가장 싸게 고칠 수 있었던 숫자였다는 것을요.
올해 검진 결과지, 다시 한 번 꺼내보세요.
참고 자료
- 대한당뇨병학회 「당뇨병 진료지침」
- 질병관리청 국가건강정보포털 「당뇨병」, 「당뇨병 전단계」
- 질병관리청 국민건강영양조사 당뇨병 관리 지표
본 글은 건강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의학적 진단이나 처방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혈당 수치의 해석과 치료 방침은 개인의 상태에 따라 달라지므로 반드시 의료진과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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